About this ebook
청와대 습격은 베트남 전쟁 시기에 한국에서 벌어진 주요 사건으로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분쟁이다. 북한은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을 서울 그의 관저에서 암살하기 위한 대담한 공격을 개시하여 미국과 한국의 결의를 시험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실패로 끝난 당시의 공격을 묘사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미군 장교로 비무장지대에서 13개월을 근무한 적이 있는 저자는 가공의 여러 등장인물을 설정하여 비무장지대에 배치된 미군과 한국군 병사들, 미군 주둔의 영향을 받은 한국 민간인들, 특히 미군 부대 주위에 퍼져 있던 기지촌의 워킹걸들과 광범위하게 얽힌 관계를 엮어낸다. 공격에 가담한 북한군 병사들도 이 소설 청와대 습격에 명쾌한 모습으로 생생하게 등장하여 그들의 선전적 정부의 통제를 받는 이들 젊은이에게 일말의 연민을 느끼게 한다.
작가 로버트 페론은 자신이 생생하게 기억하는 당시의 상황과 한국인 친구들의 기억을 선별해 흥미진진하고 때로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릴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이들 잊힌 시절의 매혹적인 군사 역사를 이야기한다. 그때도 그랬지만, 오늘에도 절박한 이야기로 남아있는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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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습격 - 로버트 페론
아이린(Irene)에게
감사의 말씀
한국에서 자료수집과 검토를 하며 신세를 진 다음 분들께 감사드린다. 하이크 코리아 ( hikekorea.com )의 로저 셰퍼드 (Roger Shepherd) 님, 통역과 안내를 해 준 강의구 님, 1968년 1월 청와대 습격 공격조와의 조우에서 생환한 우성재 님, 송달용 전 파주 시장님, 차정만 전 법원 읍장님, 장파리의 신종순 님, 정운춘 님, 눌노리의 홍성희 님, 금파리의 이진용 님.
뉴욕시에서 지도와 격려를 해주신 로어 시걸 (Lore Segal) 작가와 그녀의 목요일 저녁 워크숍에 참여하는 동료 작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로라 배스 (Laura Bass), 켄 샌드뱅크 (Ken Sandbank), 도로테아 멘도사 (Dorotea Mendoza), 로버트 맥도널드 (Robert Macdonald), 조지 베어 (George Bear), 주디스 리켄도르프 (Judith Lichtendorf), 엘리자벳 덴링거 (Elizabeth Denlinger), 마틴 헤이슨 (Martin Hason), 지인 홀리 (Jean Halley), 마저리 테서 (Marjorie Tesser). 문학지 And Then의 발행인 로버트 로스 (Robert Roth) 작가와 피닉스 리딩 시리즈 (The Phoenix Reading Series)를 진행하는 마이클 그레이브스 (Michael Graves) 시인께도 감사드린다.
지도와 검토를 해주신 고탐 라이터스 워크숍 (Gotham Writers Workshop)과 여러 강사님께 감사드린다. 엘리자벳 티픈스 (Elizabeth Tippens), 해선티카 시리세이나 (Hasanthika Sirisena), 알리나 티벤스키 (Arlaina Tibensky), 케이트 앵거스 (Kate Angus), 데이비드 유 (David Yoo), 타이스 밀러 (Thais Miller), 수잔 브린 (Susan Breen).
이 책의 출판을 위해 애쓰고 최고의 편집을 해 준 아던트 라이터 출판사 (The Ardent Writer Press)의 도일 듀크 (Doyle Duke) 님과 스티브 기어하트 (Steve Gierhart) 님께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사전 편집을 맡아 준 매튜 샤프 (Matthew Sharpe) 님과 교정을 해준 리처드 커트너 (Richard Kutner) 님께도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마지막 교정을 해준 내 여동생 수잔 피터슨 (Suzanne Peterson)에게 많은 감사의 말을 전한다.
이 소설의 한국어판 작업을 위해 번역 감수와 한글 원고 교정을 훌륭히 맡아 주신 버지니아주에 거주하는 정재욱(Jaewook Jeong) 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작가의 말
한국전쟁은 1953년 비무장지대(DMZ )라고 불리는 너비 4km의 완충지대를 따라 남·북한을 갈라놓은 휴전으로 끝나고 말았다. 미 육군은 비무장지대 서쪽 끝 약 40km의 방어 임무를 맡았고, 대한민국 육군은 250km 휴전선의 나머지 지역을 방어했다. 미군 방어지역이 상대적으로 짧기는 했지만, 서울 중심부에서 불과 55km 북쪽에 자리하고 있어서 침략군의 전통적 침공로를 방어하는 요충지였다. 게다가, 이 지역은 판문점과 공동경비구역(JSA)을 포함하고 있었다 .
정전협정 서명 후 10여 년간, 한반도는 조용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에 미국이 베트남 전쟁의 수렁에 빠지면서 비무장지대에는 예사롭지 않은 총격 사건이 급증했다. 남북미 간에 벌어진 이들 낮은 수위의 충돌은 한국 비무장지대 분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분쟁 기간 중 1968년 1월 베트남에서의 구정 공세와 때맞춰 엄청난 두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청와대 습격 사건과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이었다. 1·21 사태라고도 불리는 청와대 습격 사건은 서울의 대통령 관저를 겨냥한 북한 특수부대의 공격이었다. 이 사건은 둘 중 분명 더 심각한 사건이었다. 백악관이 무장 공격을 당했다고 상상해보라. 그러나 미국인에게 이 사건은 USS 푸에블로호와 승무원을 납치한 두 번째 사건과 베트남 전쟁의 그늘에 가려버렸다.
지금은 서울 북쪽의 비무장지대 바로 아래까지 민간인이 들어가 농사를 짓는다. 인디언 컨트리라고 불리며 미 보병 2사단만 출입할 수 있던 곳이다. 미군 부대가 철수하고 이곳을 한국군에 이양한 결과다. 1967년 북한군의 공격으로 막사 두 채가 날아간 중대급 주둔지 캠프 월리는 지금은 버려져 인적이 없고 그 북서쪽에 작은 공원이 하나 조성되어 있다. 여기에 청와대 공격조가 비무장지대를 침투하는 광경을 조각으로 재현해 놓았다. 무장공비가 임진강을 건넌 지점, 남쪽의 민간인을 붙잡아 억류했던 곳, 한국군과 전투를 벌였던 장소에도 기념물이 있다. 이들 공격조의 행적은 이제 전설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청와대 습격에 따른 전투는 대부분 한국군이 수행했으나 기습 이후 전투에 휩쓸린 미군 부대도 있었으니 (미 보병 2사단 예하) 23보병단 1대대였다.
이 소설은 청와대 습격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한편 비무장지대 분쟁 시기에 남한 주민의 삶과 북한 특수부대의 행적을 엿볼 수 있었던 미군 병사들의 경험 전반을 아우르고 있다. 지명, 부대명, 역사적 사건은 사실에 근거했으나 이야기와 등장인물은 가공이다. 특히 소설 속 등장인물과 실제 인물은 1대1로 일치하지 않음을 밝힌다. 다만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몇몇 인물은 예외로 두었다.
프롤로그: 1967년 1월, 124군 부대 훈련소
박준석은 꼼짝 않고 한 시간을 부동자세로 서서 떨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있었다. 가까이에 삼십대 중반으로 몇 살 많아 보이는 상위 한 사람이 말없이 지켜서 있었다. 상위는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았고 발아래에는 배낭 하나가 놓여 있었다. 한겨울의 찬 공기가 준석이 입은 군복의 올 사이사이로 스며들어 준석의 피부를 한 치도 남김없이 찔러대고 있었다. 엄지장갑도 손가락장갑도 끼지 않은 그는 손을 소매 안으로 끌어올린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도 못했다.
추위에 당할 만큼 당했지, 준석이 생각했다. 더 한 일은 없겠지. 좋아.
이들 위관급 장교 둘은 시멘트 블록으로 지은 막사 앞 작은 연병장에 서 있었다. 막사 앞문이 활짝 열리더니 어깨가 널찍한 장교가 다가왔다. 대위였다. 오른손에 쥔 갈색 박달나무 지휘봉으로 왼쪽 손바닥을 톡톡 치면서 대위는 준석 주위를 두 바퀴 돌며 그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그래 네가 이젠 장교라고? 새내기 소위란 말이가, 엉?
네, 대위 동무,
준석이 대답했다.
닥치라우,
대위가 말했다. 준석은 턱을 앞으로 당기고 정면을 응시했다.
앞으로 몇 달간,
대위가 말했다. 너는 잘나가는 소위가 아니다. 너는 쓰레기다. 여기서 살아남으면 그때는 네 높아진 지위를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네, 대위 동무.
닥치라고 했지.
대위의 오른손이 올라갔다. 간단한 명령 하나도 복종 못 하간?
대위의 몽둥이가 준석의 옆얼굴을 후려쳤다. 눈에 별이 번쩍이고 무릎이 후들거렸다.
더 할 말이 있나?
준석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대위가 빙긋이 웃었다. 빨리 배우는구먼, 쓰레기 동무. 그런데 동무가 추워 보여.
그는 다른 장교를 돌아봤다. 정 동무, 이 동무 체온 좀 올려줘야갔다.
알갔습네다, 대위 동무.
정 상위가 발끝에 놓여 있던 배낭을 들어 올려 내밀었다.
메라우,
정 상위가 말했다.
준석은 두 손으로 배낭을 그러쥐었는데 그 무게에 몸이 앞으로 휘청했다. 삼십 킬로그램은 더 나갔다. 그는 균형을 잡고 한쪽 팔을 어깨끈 안으로 넣고 다른 팔도 넣었다.
뛰어, 갓,
정 상위가 말했다.
준석은 왼쪽 무릎을 올려 얼어붙은 왼발을 내디디고, 그리고는 오른쪽 무릎과 발을 올리며 정상 구보 속도로 뛰어나갔다.
더 빨리,
정 상위가 소리쳤다. 움직여, 쓰레기 동무. 이게 장난인 줄 아니?
옆에 따라붙은 정 상위가 준석의 귀에 대고 소리쳤다. 지금 장난하나?
준석은 대꾸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았다. 정 상위가 훈계를 계속했다. 꽁무니 뒤로 빼는 동작 좀 봐라. 여기는 뭣 때문에 왔니? 시간 낭비하려고?
준석이 좁은 길을 따라 오르막으로 방향을 틀자 회색 블록으로 지은 막사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리에 통증이 왔다. 가슴에도 통증이 왔다. 배낭끈이 파고든 양쪽 어깨가 욱신거렸다.
몇 분이 몇 시간 같았다. 길이 오른쪽으로 돌자 오르막 경사가 완만해졌다. 뒤에서 정 상위가 말했다. 천천히. 누구 죽일 일 있니?
그의 목소리가 상냥하게 들렸다. 이게 다 꼼수일 거로 생각하며 준석은 속도를 유지했다.
천천히. 명령이다. 좋아, 이제 그만. 좀 더 천천히.
다음 오 분간 준석은 구보 속도를 늦춰 뛰었다.
정지,
정 상위가 말했다. 준석은 멈추고 차려자세를 취하려는데 배낭 무게에 뒤로 넘어질 뻔했다.
정 상위가 준석의 앞으로 나왔다. 기분이 어때?
준석은 숨을 돌이키며 대답할 말을 생각했다. 제 고통은 위대한 지도자 동지께서 우리를 위해 겪으신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상위 동무.
정 상위가 머리를 뒤로 활짝 젖히며 웃었다.
준석은 앞을 응시한 채 입술을 오므렸다. 불경스럽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이것도 시험인가?
정 상위는 장갑 낀 오른손등으로 콧물과 눈물을 훔쳤다. 자네는 124군 부대를 좋아하게 될 거야.
그가 말했다.
자, 잠깐 쉰다. 몇 가지 설명해 줄 거이 있다. 배낭 내려노라우.
준석은 주위를 돌아봤다. 정 상위와 땅, 바위, 잡목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 상위의 갸름한 얼굴과 마른 몸매가 준석의 눈에 들어왔다. 굶어서 야윈 게 아니라 근육질의 날렵한 몸매였다.
정 상위는 쪼그리고 앉더니 몸짓을 했다. 준석은 배낭을 벗어 땅에 내려놓고 정 상위를 마주하고 쪼그려 앉았다. 정 상위는 엄지장갑을 벗고 상의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가 담배를 준석에게 건넸다.
내 이름은 정명승이다. 나도 이 짓거리를 얼마 전에 마쳤어. 허 대위한테 직접 훈련을 받았지.
준석은 연기를 내뿜고 담배를 돌려줬다.
자네가 여기를 좋아하게 될 한 가지 이유가 있지,
정 상위가 말했다. 우린 잘 먹어. 매끼 흰 쌀밥. 고기도 매일. 과자도. 왠지 아니?
준석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 지휘관 동무들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지.
정 상위는 다시 고개를 활짝 젖히고 껄껄 웃었다. 박—준석—동무, 내 농담에 웃으라고 꼭 명령해야 하는 거이가?
준석은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우리가 그들에게는 최정예이기 때문이지,
정 상위가 말했다. 그게 우리를 잘 먹이는 이유지. 우리가 강인해지기를 원하는 거야. 패고 구보를 많이 시킨다고 강해지지 않지. 음식이 필요한 거야.
준석이 끄덕였다.
"자네 성분이 뭐이가, 동요 계층?"
준석이 다시 끄덕였다. 조선 인민민주주의 공화국 인구의 사십 퍼센트 이상이 중간 동요 계층이었다. 삼십 퍼센트가 상부의 핵심 계층, 삼십 퍼센트가 바닥의 적대 계층이다. 준석의 가족은 동요 계층의 상부 삼 분의 일 분류에 속했으나 어쨌든 동요 계층이었다.
그럴 것 같았어,
정 상위가 말했다. 나도 그래. 자 우리는 지금 임관과 함께 정예부대의 일원이 되어 있는 거야. 몇 대 두들겨 맞고 등에 돌을 지고 뛸 만한 거지, 안 그래?
동의합니다, 동무,
준석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뭐이가?
정 상위가 말했다. 질문이 있으면 말하라우. 그러라고 내가 있는 거니까.
왜 지망생 전부를 핵심 계층에서 데려오지 않지요? 우리 동요 계층을 받는 이유가 뭐지요?
그건 답하기 쉬운 질문이지. 구타도 당하고 돌을 등에 지고 뛰어야 하기 때문이야. 자네가 핵심 계층이라면 어디에 있고 싶겠나, 평양 아니면 여기?
평양 이야기가 나오자 준석은 죽기 전에 수도 평양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정 상위의 대답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핵심 계층이야말로 희생을 무릅쓰고 가장 어려운 복무를 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
대위들은 핵심 계층 출신이지,
정 상위는 눈을 위로 뜨며 말했다. 존경인지 아니면 반감인지 준석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허 대위, 그분은 핵심 계층이지만 자네가 신고식만 마치고 보면 괜찮은 사람이야. 근데 자네한테 할 말이 있네. 나는 자네가 쓰러져 죽을 때까지 뛰게 할 수 있고. 아까 우리가 출발했을 때처럼 계속 뛰게 할 수도 있어. 내가 왜 안 그러는지 알아?
준석은 잠자코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보기에 자네는 이 부대가 적성에 딱 맞아. 강인하고. 열심이고. 근데 어쩌면 너무 모범생이야—그 부분은 손을 좀 봐야겠지.
정 상위는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담뱃불을 끄고는 꽁초를 윗옷 호주머니에 넣었다.
오해 말게. 자네를 봐주겠다는 게 아니야. 그렇다고 내가 훌륭한 후보생을 낙방시키는 사람은 아니고. 더구나 자네는 우리 고향 사람이군. 자네 고향이 곡산읍에서 위로 육십 킬로미터에 있지, 맞아?
맞습니다, 동무.
그래 내 고향은 사십 킬로미터 위에 있고. 통조림 공장과 다른 공장이 몇 있지.
준석은 지나면서 본 그 지역을 알고 있었다.
자네 쪽에는 별것 없지,
정 상위가 말했다. 농촌, 아니니?
준석이 끄덕였다. 전부 농가입니다.
좋아, 박 동무, 잡담은 이 정도로 하고. 저 배낭 어깨에 메라우.
삼십 분 뒤 부대의 블록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속도 올리라우,
정 상위가 말했다. 들어갈 때 보기 좋아야 하지 않갔어.
준석은 막사 앞에서 정지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뛰었다. 앞문이 열리자 정 상위는 준석 옆에서 부동자세로 섰다. 허 대위가 다가와서 정 상위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대위 동무,
정 상위가 대답했다. 느려빠지고 약하지만 그런 건 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허 대위가 준석을 향했다. 귀관은 할 말이 있나?
준석은 묵묵히 서 있었다.
내가 입 닥치라고 했나?
허 대위가 몽둥이를 들어 올렸다. 내가 입 닥치라고 하는 말이라도 들었어? 대답해, 쓰레기 동무.
대위 동무,
준석이 말했다. 제가 지금은 쓸모없지만, 훌륭한 전사가 되도록 계속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아.
허 대위는 몽둥이를 내려서 왼손바닥을 톡톡 쳤다. 정 상위가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 곁눈으로 보였다. 미소도 비아냥거리는 모습도 온데간데없었다. 정 상위는 대위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글쎄 사람은 모르는 거지. 말을 신중하게 골라서 조심조심해야겠다. 정 상위가 좀 전에 했던 것처럼 탁 터놓으면 안 되겠다. 그래도 준석은 마음이 놓였다. 돌을 지고 뛰고 몽둥이찜질을 당했지만, 그래도 인민학교 시절의 자아비판에 비하면 나쁜 편이 아니었다.
1장: 1966년 12월, 김포 공군기지
론보일은 3년 군 복무기간 13개월을 남겨두고 한국에 도착했다. 그는 포트 포크에서 기초군사훈련 2개월, 포트 베닝에서 보병훈련 상급 과정 2개월을 마치고 기관총 사격장의 조교로 포트 베닝에서 19개월을 더 근무했다. E-4 상병으로 진급하여 월 기본급이 공제 전 $177.90으로 뛰었다.
포트 베닝은 론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금요일 밤이 되면 그는 기지를 나와서 차타후치강을 건너 조지아주 콜럼버스에서 앨라배마주 피닉스 시티로 갔다. 두 시간 뒤, 10년 된 그의 포드 패얼레인 자동차는 먼지를 날리며 부모가 소 두 마리를 키우는 농장의 마당에 들어섰다.
암소 두 마리에 수천 마리의 닭. 반 에이커 땅에 닭장을 짓고 갓 부화한 병아리들을 몰아넣는 걸 보고 다들 아버지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에 없던 돈 비가 쏟아졌다. 론은 아버지와 함께 장부를 들여다봤다—병아리 원가, 사룟값, 구이용 닭 판매가, 닭똥 판매가—영감은 미친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비록 동업자가 툭하면 장작으로 그의 등짝을 후려치며, 그래 계속 웃어봐라, 알겠냐? 내가 네놈을 다 패고 나면 더는 못 웃을걸?
하며 소리를 지르던 아버지였더라도 양계농장은 해볼 만한 사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즈음에는 로레인이 론이 집에 오는 주된 이유였다. 그들은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미국 고등학교는 4년제—계속 데이트해 오던 사이였다. 그는 둘의 이름을 같이 부를 때 그 소리가 듣기 좋았다. 로레인과 론, 론과 로레인. 그리고 그녀의 팬티 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했다.
론이 한국으로 전출 명령을 받은 주말, 론은 로레인에게 청혼을 했다. 밤 11시, 패얼레인 꽁무니를 풀밭에 대고 둘은 차 안에 앉아 서로 뒤엉키고 있었다. 로레인은 론이 자기의 브라를 풀고 젖꼭지를 빨게 했다. 로레인은 론의 청바지 지퍼를 내리고, 그의 물건을 손으로 감싸 쥐고는 정액이 그의 반바지에 흥건할 때까지 열심히 문질러댔다. 하지만 론은 더 많은 걸 원했으니, 떠나기 전에 제대로 침대에서 하는 본격적인 성교였다.
자기야,
로레인이 말했다. 결혼하고 일 년을 떨어져 산다는 건 말이 안 돼. 이렇게 서두르면 제대로 된 결혼식이 되겠어?
블라우스 단추를 다 끼우고 난 로레인이 몸을 돌려 론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당분간 휴식기를 가져야 할 것 같아. 오래 만났잖아.
휴식기?
론이 말했다.
자기가 돌아오면, 그때 우리가 어떻게 되어 있을지 보자고.
론은 순간적으로, 딱히 의식한 것은 아니었으나, 한때 사랑했던 이 여자의 목을 조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충동은 이내 지나가고 마음이 차분해졌다. 론은 광대뼈 가득 활짝 미소를 지었다.
몽고메리에서 직장을 구하고 있어,
로레인이 말했다. 거기서 아파트도 보고 있고.
몽고메리?
론이 말했다.
두 주 뒤 론은 민간 항공기로 워싱턴주로 갔다. 거기서 군 수송기로 한국으로 날아갔다. 김포 공군기지에서 입국 절차를 끝내고 버스로 북쪽으로 향할 즈음에는 로레인의 기억은 그에게서 희미해져 갔다. 닭도 희미해지고, 세상도 희미해졌다.
제2보병사단 본부가 있는 캠프 하우즈에서 론은 트럭을 타고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캠프 월리로 이동했다. C-레이션 상자들을 실은 보급 차량을 얻어 탄 론은 트럭의 유일한 탑승객이었다. 그가 탄 11⁄4톤 트럭은 눌노리 가는 길을 지나 장파리의 하프 문 클럽에서 좌회전한 다음 리비교로 임진강을 건넜다. 캠프 하우즈에서 정오에 출발하여 한낮을 달려 2사단 장병들이 인디언 컨트리
라고 부르는 이곳에 15:00 시에 들어간 것이다.
트럭은 기관총 총좌와 벙커들을지나서 우회전한 후 급경사를 내려가 좁은 나무다리 위를 덜덜거리며 건너고 다시 경사길을 올라서 좌회전했다. 몇 분 뒤 트럭은 정지하고 엔진이 꺼졌다. 론은 더플백을 들고 적재함 뒷문 위로 뛰어내린 뒤 주변을 둘러봤다. 퀀셋 건물 몇 채와 콘크리트 블록 건물 두 채가 서 있는 2~3에이커 규모의 영내에는 겨울의 갈색 흙먼지가 일고 있었다. 그는 빌려 입은 파카를 트럭 뒤편에 던져넣고 녹색 정복 차림으로 덜덜떨며 서 있었다.
론과 같은 계급장을 단 키 큰 흑인 E-4 상병이 발을 쿵쿵 구르며 옆에 나타났다. 보급실로 가지, 대장.
대장이라, 내가 백인이라서? 아니면 그냥 기분이 좋은가 보네.
보급 창구 반대쪽에서 그 키다리 병사가 모직 전투복, 파카, 미키 마우스 방한화, 방한모, 철모, 방탄조끼, 탄띠, 식기 수저 일습, 수통, 침낭을 밀어냈다. 그는 총기 거치대로 가서 M14 소총을 가지고 돌아왔다. 론은 소총을 번쩍 들고 안을 들여다봤다. 반자동-자동 스위치가 달린 M14는 처음 봤다.
여기선 이걸 전자동으로 놓고 쏘는 거야?
자기 맘이지, 대장. 나는 아니지만.
왜 그래?
병사가 날뛰는 말이라도 붙잡는 것처럼 두 팔을 앞으로 내 저었다. 사방으로 튀거든. 총알이 모두 허공으로 간다니까.
그가 팔을 내렸다. 그러나, 대장이 결정할 일이야.
병사는 실탄이 든 탄창 다섯 개와 수류탄 네 개를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그가 탄창 하나를 손가락으로 집어 올렸다. 탄창 네 개는 탄약 주머니에 넣어.
론이 탄창을 두 주머니에 쑤셔 넣고 있는데, 병사가 말했다. 그리고 다섯 번째는 소총에 장착하라고.
론은 탄약 주머니를 내려다보고 있다가 올려다봤다. 지금 당장?
장착하고 장전, 안전장치는 잠그고.
론의 사수가 수류탄을 집어 들었다. 이놈들 가지고 장난치지 마. 핀은 건들지 말 것. 알았소, 대장?
론이 끄덕였다. 그는 실전용 수류탄을 좋아하지 않았다.
안전하게 해놓고 저기 두는 게 제일 좋아. 어떻게 하는지 알아?
병사가 론의 탄띠를 집어 들고 벨트에 달린 달걀 모양의 작은 주머니 네 개를 가리켰다. 그는 수류탄을 밀어 손잡이가 좁은 주머니를 따라 내려가게 한 다음, 짧은 끈을 핀 사이로 통과시키고, 끈을 잡아채서 핀이 뽑히지 않도록 시범을 보였다.
병사가 출입문 쪽을 가리켰다. 침상을 보여줄게. 3일간은 필요 없겠지만, 옷 갈아입고 똥도 누어야 할 테고. 샤워도 해야겠지.
3일간 필요 없는 이유가?
당번이거든.
병사가 클립보드를 내려다봤다. 앞으로 3일간은 철책 근무야.
밖으로 나서며 론이 한마디 했다. 큰 부대가 아니네.
1개 중대용, A 중대. 한국 전체에서 가장 북쪽에 주둔하는 미군 부대라는 눈부신 명예를 가지고 있다니까.
이것 말인데,
론이 말했다. 몇 개나 입어야 해?
전부.
내 말은, 야전잠바 대신 파카를 입어야 할까 봐.
전부 다 껴입어요, 대장. 아침에 일어날 때 얼어 죽기 싫거든. 미키 마우스 방한화는 빼고. 그냥 가지고 가.
미키 마우스?
그게 그렇게 보이잖아? 발을 따뜻하게 해, 하지만 그걸 신고 걸을 순 없지. 물집이 생기거든.
한 시간 후, 론은 잔뜩 끼어 입고 보급 추진 부대 병사가 운전하는 지프 앞좌석에 탔다. 두 사람 모두 파카 위에 방탄조끼를 걸치고 후드 위로는 철모를 꾹 눌러쓰고 장전된 소총을 옆구리에 휴대했다. 캠프 월리 밖에서 좌회전하여 검문소까지 차를 몰았다. 표지판이 보였다: ‘모든 요원은 이 지점 이후 필히 무장할 것’. 미키 마우스 방한화를 신고 파카를 입은 초병이 손짓으로 그들을 통과시켰다.
지프가 북쪽을 향해 달리는데, 보급부대 병사가 말했다. 열둘, 그리고 기상.
"뭔 소리야?
나는 짧아, 대장. 내가 얼마나 짧은지 물어봐.
얼마나 짧은데?
나는 얼마나 짧은지 계기판 너머가 보인다는 게 신기하다니까.
그가 웃었다.
기상이 무슨 소리야?
내가 세상으로 돌아갈 날이 13일 남았거든. 근데 열세 번째 날은 안 치거든, 대장, 여기서 나가는 날이니까. 그래서 열둘, 그리고 기상이라는 거지.
지프는 동서를 가로지르는 도로와 T-자 교차로를 이루는 곳에서 유턴으로 차를 돌렸다.
스카이라인 드라이브,
론의 동행이 말했다. 모두 내려.
2분 뒤 론은 되돌아가는 지프가 일으키는 먼지를 지켜보다가, 스카이라인 드라이브가 지평선 속으로 가물가물 좁게 뻗어 있는 서쪽으로 흐릿하게 지고 있는 해를 바라봤다. 도로 북쪽에는 모래주머니 벙커가 중간중간에 보이는 참호가 구불구불 한 줄로 이어져 있었다. 모든 게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참호 북쪽 사 미터에는 서부 개척 시대 아파치 요새처럼 뾰족한 말뚝으로 담장이 쳐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캠프 월리도 아주 나빠 보이지는 않는군.
병사 하나가 가까운 벙커 옆 참호에서 몸을 일으켰다. 론이 그쪽으로 갔다. 병사의 파카 후드가 눈과 코, 그리고 입술에 걸려 있는 담배만 남기고 얼굴을 전부 감싸고 있었다. 론은 그의 계급을 알 수